문화재 / 양천고성지(陽川古城地)

양천고성지
양천고성지
  • 지정번호 : 사적 제 372호
  • 지정일자 : 1992년 3월 5일
  • 관리자 : 강서구청장
  • 소재지 : 강서구 가양동 산 6-4외 5필지
  • 시대 : 백제

삼국시대이래 서북대안의 행주산성, 파주의 오두산성 등과 더불어 한강하구를 지키던 요새
가양동 양천향교지 뒷산인 궁산에 위치하는 약 29,370㎡ 넓이의 옛성터로 동국여지승람, 대동여지도 등 문헌 기록에 등장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기록에 의하면, 성산(지금의 궁산)에 고성(古城)이 있는데, 그 둘레는 726척 (약 218m)이고 지금은 성으로써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어 조선 중종(1531년)때는 이미 폐성이 되었음을 알수 있으나 축성시기는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백제 22대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475년)하기 전 강건너 고구려(37BC~668AD)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성으로 조선 성종시대(1470)까지 218m의 요새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곳에서 백제 상고시대의 타날무늬 토기 파편이 발견됨으로써 백제성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고, 삼국시대 이래 서북대안의 행주산성(사적 56호), 멀리 파주의 오두산성(사적 351호) 등과 더불어 한강하구를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권율장군의 지휘를 받아 전라 소모사 변이중 장군, 강화 의병장 우성전 장군 등이 의병을 이끌고 이 성에 유진하였다가 한강을 건너 행주대첩에 참가하기도 했다. 일제시에 일본군이 주둔하였고 6.25 사변때 미군과 국군이 차례로 주둔함으로써 산 정상은 심하게 변형되어 있으나 1994년에는 산 정상 동편에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소악루(小岳樓)가 아름답게 복원되어 강서구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오시는 길

버스

양천향교 입구(가양사거리) 하차 도보로 15분

[지선버스] 6631,6712,6644

[광역버스] 9602

지하철

5호선 발산역(3번 출구) -> 마을버스 6644 (가양사거리 하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