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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상상력에 담긴 물의 의미
작성자 김용성 날짜 2020-02-13

신화 속 상상력에 담긴 물의 의미

신화는 삶과 자연, 초자연 세계를 향한 인간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영생불멸하는 신들의 이야기지만 죽음이라는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신화는 때로 종교나 법 대신 사회를 통합하고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4대 문명 발생지는 물론 아시아와 유럽, 중앙아메리카와 아프리카까지 인류가 살았던 곳 어디서나 신화는 존재한다.

신화 속에는 신비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 가지 상징이 존재하는데, 여러 신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상징 중 하나가 물이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완전한 상징인 물은 실제 지구 생명의 탄생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생명체의 생존 열쇠이기도 하다. 인류가 물의 중요성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는 신화 속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이집트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원초적 혼돈[‘눈’ (nun)]은 물속에서 출현했고, 인도 신화 속 창조신 비슈느(Vishnu) 역시 바다에 잠들어있는 존재이다. 신화 속 태초의 기적이 물에서 발현하는 것은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바닷물의 여신 티아마트(Tiamat)는 땅의 신과 결합하며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

대부분의 신화의 시작이 물과 관련된 이유는 단순하다. 채집생활에서 정착생활, 나아가 완전한 국가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바로 물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농작물을 경작하는 농업사회로 진입하면서 거대한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따라서 그 무엇보다 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 정신은 신화에 고스란히 형상되어 있다.

서양 문명의 문화와 예술의 시작점이 된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물은 신과 영웅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매개체이다. 호메로스는 시를 통해 대지를 물 위에 떠 있는 평평한 원판으로 설명하고 있고, 올림포스의 12신 중 하나인 포세이돈은 물을 관장한다. 신화 속 그의 모습은 물고기나 돌고래 떼와 함께 파도를 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미의 여신으로 불리는 아프로디테(비너스 Venus)는 물의 생명력 자체를 나타낸다. 자식들을 집어삼키는 우라노스를 보다 못한 가이아는 아들인 크로노스에게 그를 죽일 것을 명령하고, 그때 물로 흘러간 우라노스의 피에서 생긴 거품 속에서 아프로디테가 탄생한다.

물을 내면을 비추는 거울로 상징하고 있는 신화도 있다. 빼어난 외모로 여러 요정에게 구애를 무시한 나르키소스는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만을 사랑하게 된다. 고요하게 사물이 미치는 수면은 인간 내면과 외면을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물은 치유와 정화의 의미도 내포한다.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에서는 물을 이용한 세례의식을 통해 죄를 씻어낸다. 특이한 점은 물이 귀한 지역의 종교에서 이러한 특징이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희소가치가 높은 자원인 물을 귀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인간의 무의식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노아의 방주’에서처럼 물은 죄악이 가득한 사회를 파괴하고 재생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앞서 살펴본 물의 상징은 동양 신화에도 고스란히 용해되어 있다. 중국 신화 속 여신 여와(女媧)는 물에서 탄생했으며 대홍수가 발생한 인류를 구원했다. 물에서 나온 신이 대홍수를 막는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데우칼리온 부부나 노아의 방주 등 세계 곳곳에 있는 신화와 비슷한 구조이다.

우리나라 신화에도 물은 비슷한 이미지이다. 고대국가를 형성하는 시초가 된 인물 뒤에는 물이 있다. 물이 만물의 근원이자 농경사회의 풍요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주몽신화 속 유화부인은 물의 신인 하백의 딸이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에게 신성성과 당위성을 실어주는 매개체가 물이 된다. 이러한 설정은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 가야의 김수로왕을 찾아 물을 건너온 허황후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매우 신비스러운 물의 이미지는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화려한 분수의 시초가 되는 로마의 트레비 분수에는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빈다. 로마에 있는 수많은 분수 중 트레비 분수를 더 특별하게 만든 것이 분수 중간에 서 있는 물의 신 ‘포세이돈’ 상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물 성분 자체에 대한 신비감은 사라졌지만 물은 여전히 하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역사적으로 강물은 대문명의 바탕이 되었다. 물이 없는 낙원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도 지구 생명체는 물을 통해 생명을 영위해나간다. 인간심리 분석학의 기초를 세운 칼 융(Carl Gustav Jung)은 상징은 인류의 심리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서 우리가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된다고 해석했다. 신화 속에 드러난 다양한 물의 상징이 반복적이고 공통적인 것은 인류가 물을 실용적인 가치로만 인식하지 않고 감성적, 심리적, 종교적으로 중요하게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수정일자 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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